VOLUME II · UNIT II · LESSON 03

통일신라와 발해의 문화

불국사의 다보탑과 석가탑, 석굴암의 본존불, 성덕대왕신종의 울림. 그리고 발해의 연꽃무늬 와당과 정혜·정효 공주묘. 두 나라가 함께 빚어낸 동아시아의 황금기.

LEARNING GOAL성취기준
9역09-03 통일신라의 불교·미술·학문과 발해의 고구려·당 융합 문화를 비교하고, 두 나라의 문화 교류를 이해한다.
SECTION · 01

통일신라의 불교 — 대중에게 내려온 부처

통일 후 신라의 불교는 왕실의 것에서 백성의 것으로 내려왔다. 원효와 의상이 길을 열고, 혜초가 인도를 다녀왔다.

👤 신라 불교의 세 별

WONHYO · 617~686

원효 — 대중의 스님

일심사상(모든 종파가 한 마음에서)·화쟁사상(분쟁 화해). 어려운 교리 대신 "나무아미타불" 한 마디로 누구나 구원 가능 — 아미타 신앙으로 불교를 대중에게.

UISANG · 625~702

의상 — 화엄종의 시조

당에 유학하여 화엄종을 들여옴. 부석사(영주) 등 화엄종 사찰 건립. "하나가 곧 모두, 모두가 곧 하나" — 통일의 시대정신과 통하는 사상.

HYECHO · 704~787

혜초 — 인도까지

당을 거쳐 인도(천축국)까지 다녀와 『왕오천축국전』 저술. 8세기 인도·중앙아시아의 모습이 담긴 세계적 여행기. 1908년 둔황 막고굴에서 발견.

의상대사 영정
의상대사 영정화엄종의 시조 — 부석사 창건.
성덕대왕신종
성덕대왕신종 (에밀레종)국보 29호. 높이 3.66m, 무게 18.9톤. 한국 최대 동종.
SOURCE · 원효의 일화
『삼국유사』 원효불기

"원효가 한밤중에 갈증이 나서 어둠 속의 물을 마셨는데 매우 시원하고 맛있었다. 아침에 보니 그것은 해골에 고인 물이었다. 토할 뻔하다가 원효가 크게 깨달았다 — '마음이 일어나면 갖가지 법이 일어나고, 마음이 사라지면 해골과 청정한 물이 둘이 아니다.' 그래서 그는 당 유학의 길을 포기하고 돌아와 신라에서 불법을 폈다."

— 일연 『삼국유사』 (해골물 일화)
SECTION · 02

불국사와 석굴암 — 신라 미술의 정수

8세기 경덕왕 시기, 김대성이 부모를 위해 짓기 시작한 두 작품. 1995년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통일신라의 가장 빛나는 유산.

불국사
불국사 — 경주 토함산 자락김대성이 8세기 경덕왕 때 시작. 청운교·백운교를 올라 자하문에 이르면 불국(佛國)에 들어선다. 사적 502호 · 세계유산.
다보탑
다보탑국보 20호. 4각·8각·원형이 한 탑에 — 화려하고 복잡한 형태로 통일신라 석탑의 백미.
석가탑
석가탑(석가여래상주설법탑)국보 21호. 균형 잡힌 단순미. 1966년 해체 수리 중 세계 최고(最古) 목판 인쇄물 무구정광대다라니경 발견.
석굴암
석굴암 본존불국보 24호. 동해를 바라보는 토함산 정상의 인공 석굴. 1995년 세계유산.
DEEP DIVE · 석굴암의 비밀

인공 동굴 · 수학 · 빛 — 8세기의 과학

석굴암은 자연 동굴이 아니라 화강암을 깎아 인공적으로 만든 석굴이다. 본존불을 중심으로 사방을 둘러싸는 보살·천왕·나한들이 360도로 배치되어 있다.

가장 놀라운 것은 비례와 수학이다. 본존불의 키, 어깨, 가슴, 몸통의 비율이 정확히 1 : √2 : √3의 비율로 설계되어 있다. 또 본존불의 시선이 정확히 동지의 일출 방향(동남쪽 약 28도)을 향한다. 8세기 신라가 이미 정교한 수학과 천문학을 알고 있었다는 증거.

"석굴암은 8세기 동아시아 종교 미술의 최고 걸작이며, 인류 문화 유산이다. 그 정교한 비례와 종교적 깊이는 어느 시대 어느 문화의 것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 —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평가 (1995년)

그러나 이 위대한 작품도 일제강점기와 광복 후의 보수 공사로 원형이 일부 훼손되었다. 콘크리트로 덧씌우고, 공기 순환 방식을 바꾸면서 결로 현상이 생긴 것 — 지금까지도 학계의 논쟁거리다. 문화재를 보존한다는 것의 어려움을 보여준다.

SECTION · 03

발해의 문화 — 고구려와 당의 융합

고구려 유민이 세운 발해는 고구려의 강건한 미감을 이어받되, 당으로부터 새로운 양식을 흡수했다. 와당·온돌·돌방무덤·불상에 그 흔적이 분명하다.

UNIFIED SILLA

통일신라 문화

"황금의 도시, 부처의 나라"

경주를 중심으로. 불국사·석굴암·다보탑·석가탑. 당과의 활발한 교류 — 당의 영향을 받되 신라식으로 변형. 화려하고 정교한 미술.

BALHAE

발해 문화

"북녘의 황금기, 해동성국"

5경(상경·중경·동경 등)을 중심으로. 고구려 + 당의 융합 — 와당·온돌은 고구려식, 도시 구조는 당의 장안성 모방. 강건하고 거대한 미감.

발해 연꽃무늬 와당
발해 연꽃무늬 와당고구려의 연꽃무늬 와당과 거의 같은 양식 — 발해의 고구려 계승을 보여주는 결정적 유물.
발해 중경 유적
발해 중경 현덕부 유적지린성 화룡. 5경 중 하나. 도시 외곽의 흙성과 내부의 격자형 거리 — 당의 장안성을 모방.

🏛️ 발해 문화의 세 얼굴

FROM GOGURYEO

고구려 계승

연꽃무늬 와당, 온돌, 굴식 돌방무덤(정혜공주묘), 고구려식 불상(이불병좌상).

FROM TANG

당의 영향

벽돌무덤(정효공주묘), 도시 격자 구조(상경 — 장안성 모방), 3성 6부 관제, 유학·한문학.

BALHAE'S OWN

발해 독자성

독자 연호(인안·대흥·건흥), 거대한 석등(상경 출토), 6부의 유교적 명명(忠·仁·義·智·禮·信).

SECTION · 04

참 / 거짓 — 8문제로 정리하기

각 진술이 참인지 거짓인지 선택하고, 전체를 확인해 보자.

🪷 통일신라·발해 문화 참·거짓

0 / 8

각 진술의 참/거짓을 선택. 전체를 다 선택한 후 "정답 확인"을 누르면 해설이 나온다.

원효는 "나무아미타불"을 외우면 누구나 극락에 갈 수 있다는 아미타 신앙으로 불교의 대중화를 이끌었다.
참. 원효는 일심사상·화쟁사상으로 종파 갈등을 해소하고, 아미타 신앙으로 백성도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을 열었다.
의상은 당에 유학을 가지 않고 신라에서 독자적으로 화엄종을 만들었다.
거짓. 의상은 당에 유학해 화엄종을 배워 와서 신라에 전했다. 영주 부석사 등 여러 화엄종 사찰을 창건.
혜초의 『왕오천축국전』은 둔황 막고굴에서 1908년에 발견된, 8세기 인도·중앙아시아의 모습을 담은 세계적 여행기다.
참. 혜초가 당을 거쳐 인도까지 다녀와 쓴 책. 프랑스 학자 펠리오가 둔황에서 발견했고, 현재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있다.
불국사의 석가탑을 해체 수리하던 중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판 인쇄물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 발견되었다.
참. 1966년 석가탑 사리함에서 발견. 751년 이전에 인쇄된 것으로 추정되어 현존 세계 최고 목판 인쇄물.
석굴암은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동굴 안에 본존불을 놓은 작품이다.
거짓. 석굴암은 인공적으로 만든 석굴이다. 화강암 돌을 깎아 둥근 천장의 인공 동굴을 만들고 그 안에 본존불과 보살상을 배치했다.
발해의 연꽃무늬 와당은 고구려의 연꽃무늬 와당과 매우 비슷하여, 발해가 고구려를 계승했다는 증거가 된다.
참. 발해 와당의 양식·문양이 고구려 와당과 거의 같다. 온돌·돌방무덤도 마찬가지로 고구려 계승의 증거.
발해의 정혜공주묘는 당식 벽돌무덤이고, 정효공주묘는 고구려식 돌방무덤이다.
거짓. 반대다. 정혜공주묘가 고구려식 굴식 돌방무덤, 정효공주묘가 당식 벽돌무덤이다. 발해 후기로 갈수록 당의 영향이 커졌음을 보여준다.
발해는 인안·대흥·건흥 등의 독자 연호를 사용해 당과 대등하다는 의식을 보였다.
참. 무왕(인안)·문왕(대흥)·선왕(건흥) 등의 독자 연호 사용은 발해가 당의 책봉을 받으면서도 대등한 의식을 유지한 자주성의 증거.
SECTION · 05

한 줄로 정리하면

핵심 정리

  • 통일신라 불교는 대중화되었다 — 원효(아미타 신앙·일심사상), 의상(화엄종·부석사), 혜초(『왕오천축국전』).
  • 김대성이 지은 불국사·석굴암은 통일신라 미술의 최고 걸작 — 다보탑·석가탑·본존불. 1995년 세계유산 등재.
  • 석가탑에서 세계 최고(最古) 목판 인쇄물 무구정광대다라니경(751년 이전) 발견.
  • 발해 문화는 고구려 계승(와당·온돌·돌방무덤) + 당의 영향(벽돌무덤·도시 격자·관제) + 발해 독자성(연호·6부 명명)의 융합.
  • 정혜공주묘(고구려식)와 정효공주묘(당식)의 차이는 발해 후기 당의 영향이 커진 것을 보여준다.